8월 11일
김경숙열사 43주기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모란공원 묘역에서 추모제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비가...비가...
폭우가....
그래서 올해는 공간 여성과 일 6층 열린숲에서 추모제가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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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김경숙열사와 그날을 기억하고
합창도하고 추모식 낭독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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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김경숙열사는 민주사회를 위해 항거한 공을 인정받아 국가 훈장인 모란장을 받으셨습니다.
김경숙열사의 뜻과 정신을 기억하며후배들이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유가족분들께서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에 김경숙열사의 훈장과 후원금을 전달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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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식은
선후배들이 모여 웃고 울고 이야기하며
김경숙열사를 다시금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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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_여성노동운동가 #김경숙열사를_아시나요?
1979년 국내 최대 가발공장인 YH무역이 여공들의 임금 수개월 치를 체불한 채 수십억원의 돈을 미국으로 빼돌리고 폐업을 했습니다. 일방적 폐업에 맞서 회사 정상화를 요구하던 여성노동자들은 박정희 정권의 폭력진압에 무자비하게 끌려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갓 스물의 김경숙열사는 폭력진압의 과정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세상을 달리 하셨습니다. 경찰은 김경숙 열사의 죽음을 자살로 발표했습니다. 이 사건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고, 부마항쟁을 촉발했습니다. 역사는 박정희 정권 몰락의 기화점이라고 이 사건을 기록합니다. 20여년이 흐른 2008년이 되어서야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해서 겨우 국가폭력에 의한 타살이었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서 일해야 했던 김경숙 열사에게는 가르쳐야할 남동생과 생활비를 보내주어야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김경숙열사는 야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YH노동조합에서 열렬히 활동했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노동자로서 세상을 바꿀 꿈을 꾸었던, 20세 가장으로서의 고민이 오롯이 담긴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987년 창립 이후 계속 김경숙열사 추모제를 도맡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엄혹했던 시기에도 이 추모제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김경숙 열사는 우리 시대 여성노동자운동의 증인이고,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추모제에는 여성노동자회 회원, 활동가 뿐아니라 70년대 노동운동을 하셨던 많은 선배들께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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